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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할로윈 with 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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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조하고 서늘한 공기가 감도는 아침. 뜨고 싶지 않지만 관성적으로 떠지는 눈. 무거운 몸을 웅크리며 이불 안으로 파고든다. 네가 나 대신 안고 잠들곤 하던 바디필로우를 손을 더듬어 찾는다. 그대로 꾹 끌어안고 고개를 파묻었다. 눈을 질끈 감자 잔상같은 기억들이 스친다. 지난 밤도 괴로웠던 그 찰나가 꿈자리를 뒤집어놨다.



 

 큰 프로젝트가 끝나가던 무렵, 한차례 봄비가 지나가고 꽃비가 수북히 거리에 쌓이던 4월 말이었다. 너는 꽃 다 졌는데 무슨 구경이냐며 전화상으로 한참을 툴툴거리곤 했다.

 

 "너네 회사 진짜 맘에 안 들어."

 "미안해, 벚꽃 보러 가고 싶다고 했는데."

 "너 회사 사람들이랑 다 봤지. 너네 회사 앞에 벚꽃 예쁘잖아."

 "아니야, 기억도 안 나."

 "씨이..."

 

 한참을 꽁알거리는 네가 귀여워 사과를 하는 와중에도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그걸 캐치하곤 뭘 잘했다고 실실거리냐며 타박하는 너는 덤이었다. 오랜만에 주말에 만날 약속을 잡고 전화를 끊고, 간만에 기분좋게 잠에 들었던 거 같다.

 그치만 그 주말에도 우리는 만날 수 없었다. 아니, 영원히 보지 못하게 됐단 말이 더 정확하겠지.

 

 그날의 기억은 조각나있다. 파편을 굳이 맞춰볼 시도는 하지 않았다. 어떤 파편은 앰뷸런스에 급히 실려가는 너를 따라 올라타던 기억, 다른 파편은 응급실에서 급히 뛰어다니는 의사들 사이로 보이던 베드 위의 너의 모습 같은 것들. 그 소란스러운 가운데, 네 생명이 끊기는 잔인한 기계음이 선명히 고막에 박혔다.

 세상을 떠난 이 뒤에는 수많은 정리할 것들이 있었다. 세상에서 네 흔적을 하나씩 정리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무너졌다. 회사는 그대로 휴직계를 썼다. 네가 살던 집에서 네 짐을 정리하고 내 집으로 들고와 쌓아뒀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성벽을 만들었다. 내 성 안에서, 내 머릿속에서만큼은 아직 네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렇게 반 년을 서서히 죽어갔다.


 

 눈을 번뜩 뜨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휴대폰 전원을 켜고 날짜를 확인한다.

 10월 30일.

 차가운 이불 밖, 방바닥에 발을 짚고 몸을 일으킨다. 좁은 바닥 여러곳에 네 물건들이 발에 채인다. 암막커튼 덕에 낮인지 밤인지 구별도 안 가는 어둑한 방 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주방에서 물 한 컵을 채워 들이키곤 버릇처럼 리모컨을 들어 티비를 켠다. 귀에 아무 소리도 안 들리면 네 목소리가 웅웅거려 생긴 버릇이었다. 내가 뉴스 채널을 보다가 껐었나 어제.

 무지성으로 돌리는 채널. 그러다 걸린 한 채널.

 

 "할로윈?"

 

 내일이 할로윈이구나. 티비 속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할로윈을 기념하여 각종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모습이 흘러나온다. 할로윈. 저런 기념일 챙기는 거에 심드렁하던 너를 자주 놀리곤 했지.

 홍중아, 밥 먹자.

 이게 뭐야.

 오늘 할로윈이래서.

 ...그래서 호박죽을 준다고?

 어!

 그냥 너가 먹고 싶었다고 해...

 또 스치는 기억들에 쓰게 입꼬리를 올린다. 머리를 좌우로 내저으며 리모컨을 침대 위로 던진다. 정신을 차릴 필요가 느껴져 비적비적 화장실로 향한다. 대충 양치를 하고 찬물로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나온다. 창가로 다가가 슬쩍 커튼을 걷어본다. 뉘엿뉘엿 해가 진다. 좁게 빛이 들어오는 틈 앞에 쭈그려 앉아본다.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유리창에 살폿 이마를 갖다댄다. 냉기가 느껴지는 바깥. 입김을 불어 흐려진 유리 위로 손가락을 문질러 네 이름을 새긴다.



 

 그래, 어제도 분명 그렇게 기억이 닿는 곳마다 널 떠올리다가 잠들었던 것 같은데.

 

 "...홍중아?"

 

 이게 무슨 상황이냔 거지.

 

 "성화야..."

 

 그러니까, 나는 분명 바디필로우를 붙잡고 눈을 감았는데. 눈을 뜨니 내 품에 있는 건 따스한 온기를 지닌 너였다. 왜 품이 따뜻하지, 왜 이렇게 익숙하지, 내가 또 꿈을 꾸는 건가 싶어 품을 확인하니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보드라운 네 정수리였다. 화들짝 놀라 저도 모르게 몸을 뒤로 성큼 물리고, 침대 아래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떨어졌다. 쿵- 소리와 함께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건, 분명 너였다. 반 년 전 그 모습 그대로.

 

 "아니... 아니 잠깐만..."

 

 이미 얼얼한 엉덩이를 보아하니 아무 소용이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구닥다리처럼 볼을 세게 꼬집어본다. 아- 존나 아픈데. 꿈은 절대 아닌데.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았던 친구가 한 말처럼 내 머리가 진짜 어떻게 돼버리기라도 한 걸까? 성큼 다가오는 두려움에 급히 바닥을 기다싶이 식탁으로 가 약 봉투를 급히 쥐어본다. 그때 소리치는 너.

 

 "성화야!"

 "헉, 허억... 어... 어?"

 "진정해... 잠시만 진정해... 나 보여? 나 들려?"

 "...진짜 너야?"

 "내 목소리 들려?"

 "들려."

 "내 얼굴 보여?"

 "보여..."

 

 내 대답에 얼굴이 일그러지는 너. 그대로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버거운 울음을 삼켜낸다. 도저히 현실감이 없는 상황에 어찌 할 갈피를 못 잡다, 조심스럽게 너와 거리를 좁혀본다.

 

 "...어떻게 된 거야."

 "나... 나 계속 네 옆에 있었어."

 "뭐?"

 "네가 내 짐 챙겨왔잖아."

 "그치."

 "저거... 바디필로우."

 "바디필로우?"

 "거기에 갇힌 것처럼 지냈어."

 

 네 말을 듣자마자 숨이 턱 막혀온다. 그대로 구역감처럼 눈물이 터져나온다.

 

 "...다 보고 있었어?"

 "응."

 "아... 미안... 미안해... 미안해, 나는..."

 "네가 왜 미안해."

 "내가, 내가 그날 거기서 보자고 그래서, 아니 그냥 내가 너 안 데리러 가서 그래. 아니야 그냥, 그냥, 너는 어떻게 혼자서... 혼자서 여기서..."

 

 횡설수설 말을 이어가다 결국엔 무너지듯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바닥에 처박았다. 반 년간, 나는 죽어가고 있었지만 너는 죽어가는 나를 닿지 않을 위로와 눈물을 삼켜내며 지켜봐왔을 걸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입에선 어지러이 여러 단어들이 쏟아졌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어떻게 그랬어...

 

  둘 다 겨우 감정을 추스르곤, 함께 등을 벽에 기대곤 침대에 나란히 앉았다. 조심스럽게 네 손을 잡았다.

 

"온기가 느껴지는 게 신기하다."

 "그러게."

"그것만 신기한 게 아니긴 하지만."

 "맞긴 해."

 "...어떻게 된 걸까 이게. 앞으로 계속... 이렇게 보이는 걸까?"

 "성화야."

"응?"

 "우리 예전에 본 영화 기억나?"

 "무슨 영화?"

 "일 년에 한 번. 망자의 날에 죽은 사람들이 놀러온다던."

 "...아."

 

 우리는 더는 아무 말도 잇지 않은 채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우선 방 안을 걸어봤다. 방 안에서는 너는 평범한 사람처럼 혼자 걷기도, 뛰기도, 다 가능했다. 먹는 거는 가능할지는 모르겠으나 배가 전혀 고프지 않다고 했다. 물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 혹시 집 밖으로는 못 나가는 걸까 싶어 살짝 문을 열고 네 발만 빼꼼 내밀게 해봤다. 걱정했던 것처럼 네가 사라진다거나 하진 않았다. 외출도 가능하구나. 만약 오늘만 보이는 거면 그냥 시한폭탄 같은 거일까. 건물 복도로 나와 너와 이것저것 테스트(?)해보는 중, 이웃집 문이 열린다.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그, 저... 제 옆에 혹시..."

 "옆이요?"

 "뭐 없나요?"

 "...아무것도 없는데요."

 

 순간 나를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웃의 눈길에 급히 하하, 미소지으며 변명을 해본다. 아니 아까 벌레가 기어가길래요. 아아, 네. 이윽고 사람이 떠나고, 우리는 눈을 맞췄다. 너는 나에게만 보이는구나. 집 안으로 다시 들어가 가득 쌓여있는 네 짐을 뒤져 옷가지와 신발을 꺼낸다.

 

 "밖에 많이 추워졌어."

 "그렇구나..."

 "따뜻하게 입고 나가자."

 

 네게 양말을 신겨주고, 목도리를 둘러준다. 마주치는 시선에 입꼬리를 올리며 이마에 살폿 입을 맞췄다.


 

 어차피 네가 뭘 먹진 않으니 식당이나 카페 같은 데를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엘리베이터를 잡으며 급히 시간을 확인한다. 눈이 일찍 떠져서 다행이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었다. 모자까지 야무지게 씌워준 너는 반 년만의 생경한 세상을 느끼는 듯 눈동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호기롭게 내려간 주차장. 그치만 몇 달이나 방치해둔 차가 멀쩡히 시동이 걸릴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너를 데리고 대중교통을 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이 일분일초가 아까운 상황에 보험사를 불렀다. 초조하게 머리를 긁적이다, 나를 올려다보는 너를 문득 쳐다봤다.

 

 "...왜 그렇게 봐."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어?"

 "나는 평소 너 같아서 그냥 재밌는데."

 "뭐라고?"

 "아닌가? 너 원래 준비성 철저하니까 이런 건 또 처음 보는 거긴 하네." 

 

 옛날 생각을 더듬는 듯 눈을 살짝 위로 뜨며 입술을 달싹이는 너. 이윽고 도착한 보험사 직원. 금세 차를 정비하고, 조수석에 널 태운다. 얼마만의 외출이지.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며 운전석과 조수석의 창문을 활짝 내린다. 거세게 들이치는 바람에 네 길다란 앞머리가 휘날리고, 너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눈 찔리잖아."

 "바람 좋기만 하네."

 

 정말이었다. 오른손 위에 포개진 네 온기도, 함께 맞는 바람도, 진짜인지 착각인지는 몰라도 바람에 실려오는 듯한 네 체취도 다 좋았다. 너는 잠시 멈추더니, 크게 더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강. 이른 시간의 한강은 크게 사람이 붐비지 않았다. 너와 손깍지를 낀 채 하염없이 걸었다. 너는 조잘조잘 여러 말들을 꺼냈다. 한강 둔치 걸을 때 발바닥에 닿는 감각이 이런 거였지, 가을 공기가 이런 향이었구나, 한강은 여전히 물이 구려보인다, 눈이 부신다 등... 간만의 오감에 대한 감상을 가만히 들으며 네 팔을 앞뒤로 힘차게 흔들었다.

 그러다 문득 시야에 들어온 건 캐리커쳐를 그리는 사람이었다. 눈을 크게 뜨곤 네 옷깃을 잡아당겼다.

 

 "홍중아. 저거, 저거."

 "응? ...그림?"

 "응."

 

 아직 대기줄이 없는 이젤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 의자에 앉는다. 혼자시냐고 묻는 화가의 질문에 잠깐 멈칫하다, 주머니를 뒤적여 휴대폰을 꺼낸다.

 

 "아 저 혼자... 긴 한데요. 이 사람 옆에 같이 그려주실 수 있어요?"

 "네?"

 "안 될까요?"

 "아뇨... 안 될 건 없죠. 사진 주세요."

 

 떨떠름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아드는 화가. 나는 미소짓는 표정을 유지한 채, 복화술로 너와 대화를 이어갔다.

 

 "너 진짜 바보 같아 지금."

 "조용히 해, 웃기지 마."

 "야, 너 복화술 진짜 못해."

 "웃기지 말라고."



 

 "너 어디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겠다."

 "뭐 어때, 다시 안 볼 건데."

 

 이런저런 요청사항과 수정사항으로 화가분을 괴롭히며 완성된 그림을 보며 히죽거리다 널 쳐다봤다. 미묘한 너의 시선. 네 시선은 아무래도 널 그린 쪽에 꽂혀있는 듯했다. 스스로의 모습이 보고 싶었겠지. 나는 그저 입꼬리를 올리기만 했다.


 

 "햇빛은 느껴져?"

 "느껴지는 건지, 느껴진다고 착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어."

 "신기하네."

 "기억에 의존하는 느낌인 거 같아."

 

 벤치에 앉아 수면을 바라보며 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꿈에 이런 상황들이 자주 나오곤 했지. 널 다시 만나게 되면 어떤 얘기를 나누려나. 그냥 예전과 똑같을까, 서로 괴로워하기만 할까,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이별을 두려워하며 애타게 사랑고백을 할까. 몇 시간 정도 흐른 지금은 익숙해진 듯 우리는 반 년 전의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주변을 살짝 둘러보다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곤 네 볼에 짧게 쪽, 입을 맞추곤 떨어진다. 너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화들짝 놀라 고개를 휙휙 돌리며 근처를 살핀다.

 

 "네가 왜 둘러봐."

 "너 진짜 한강 미친놈이라고 어디 올라간다니까?"

 "알 바야?"

 "계속 살려면 알 바지."

 

 툭 내뱉는 듯하다가도 문득 내 손목에 시선이 머무는 너. 나는 조심스레 손바닥으로 손목을 쓰다듬었다. 너도 이내 손을 뻗어 상처 위를 조심스레 포개온다. 나는 괜찮다는 대답 대신 슬픈 네 손등을 천천히 쓸었다.

 

 낮이 많이 짧아졌다. 어느덧 어둑해진 하늘. 내 배에서 울리는 꼬르륵 소리에 네 웃음이 터진다. 그도 그럴 게 네가 밥 안 먹는다고 나도 한 끼도 안 먹었으니...

 놀리지 마라며 장난스레 타박하곤, 근처 푸드트럭에 가서 뭘 사 오기로 하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김이 나오는 때가 아니라 아쉽다며 하아- 괜히 긴 숨을 내쉬어보는 널 보며 킥킥거렸다. 그러다 발 끝에 걸리던 돌부리. 스텝이 꼬이고, 어어- 휘청이다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지려 한다. 날 잡으려 뻗는 네 손.

 그러나 내 팔을 통과해버리는 네 손.

 그대로 철푸덕, 길바닥에 넘어져버린다. 넘어진 고통보다 네 손을 관통하던 허망함이 차오른다.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켜 네가 있는 곳을 올려다본다. 놀란 건 너도 매한가지인 듯했다. 주변에서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덮쳐오는 기억들. 귀를 급히 틀어막고 몸을 웅크렸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 휘몰아치는 머릿속. 뇌리를 채우는 성난 기계음. 눈을 질끈 감고 정제되지 않은 말들을 한참 웅얼거렸다. 그때, 벼락치듯 손바닥 너머에서 들리는 외침.

 

"박성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본다. 발개진 눈으로 날 바라보는 김홍중. 시선을 살짝 내리자 이제는 닿지 못하는, 한참을 시도했던 듯 애매하게 허공에 머무는 네 손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은 얼굴. 나는 급히 몸을 추켜 스스로 일어나곤 무릎을 툭툭 털었다.

 

 "...얼른 집에 가자."



 

 어떻게 집까지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차에선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급히 집 문을 열고 들어온다. 불을 켜고 널 쳐다보자, 그제서야 다른 점이 눈에 들어온다. 눈에 띄게 옅어진 듯한 네 모습. 천천히 떨리는 손을 뻗어 네 어깨를 잡아보지만 흐릿한 연기처럼 잡히지 않는다. 떨리는 다리를 간신히 지탱한다.

 

 "아..."

 

 입 밖으로 간신히 나온 건 외마디 탄식이었다. 너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언뜻 보면 담담한 듯 보이기도 했다.

 

 "왜... 왜 가는 거야."

 "성화야."

 "진짜 그냥 하루 이벤트야? 왜? 뭘 위해서?"

 "성화야..."

 "이럴 거면... 이럴 거면 그냥 계속 혼자로 놔두지 그랬어."

 

 안다. 떠난 것도, 다시 나타난 것도 무엇도 네 잘못은 없단 걸. 모든 걸 알지만 화풀이하듯 이렇게 소리치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다. 얼굴을 감싸며 남은 울분을 구역질하듯 토해낸다.

 

 "이대로 다시 사라지면... 나보고 어떡하라고."

 "..."

 "제발... 제발 그냥 다시 돌아온다고 해줘."

 "..."

 "아니면... 아니면 차라리 그냥 나도..."

 "아악! 제발!"

 

 이윽고 너는 비명을 지르며 방 안을 휘저었다. 더는 아무 물건에도, 나에게도 닿지 못하는 주먹질을 마구 내지르는 너. 숨도 참은 채 가만히 널 지켜봤다. 무엇도 집을 수 없고 내칠 수 없는 네 손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나였다. 내 가슴팍을 치며 엉엉 울고 싶던 걸까. 그마저도 할 수 없단 걸 아는 너는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 아무렇지 않은 거 아니야."

 "..."

 "나... 나 오늘 하루 느낀 감각들이 너무 행복한데 너무 괴로웠어 성화야."

 "홍중아."

 "뺨에 스치는 바람이, 걸을 때 느껴지는 바닥재의 촉감이, 네 목소리가, 네 온기가... 다, 다 너무 그리웠던 것들이라서..."

 "...미안해."

 

 네 앞에 쭈그려앉아 허공에 팔을 둘러 널 안았다. 이젠 닿지 않는 네 등을 통과하는 손이 야속했다. 눈을 질끈 감고 기억에 의존해 네 등을 쓰다듬었다.

 

 "내 욕심으로 오늘 하루 보내서 미안해."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힘들었지."

 "좋았어."

 "나도."

 "너도 많이 힘들었지." 

"아니야."

 "이제 일상적인 거 보고 힘들어하지 마."

 "응..."

 "울지 마."

 "안 울게, 앞으로는."

 "응..."


 

 몇 시간 남짓 남은 시간, 나는 점점 더 옅어지는 너를 눈에 새길 듯 바라봤고, 너는 내 허벅지 위에 힘을 줘 손을 올려 버텼다. 팔이 저린 듯 보였지만 이 감각마저 좋다며 너는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는 애써 피해오던 이야기들을 쏟아냈다.

 

 "내년에도 내가 나올 수 있을까?"

 "내년에도 오겠지."

 "그럼 나는 또 저기 갇혀서 1년동안 사는 건가."

 "어땠어."

 "엄청... 갑갑해. 엄청 힘들어."

 "나한테 안겨서 잘 때는?"

 "무거웠어."

 "그게 다야?"

 "나는 잠을 못 자니까. 그냥... 자는 너 보는 게 좋은 거지."

 "나 자면 심심할 거 아냐."

 "그때 네 얼굴이 제일 편안해보여서."

 

 손목을 보여달라는 듯한 네 제스처에 조심스레 소매를 걷어 네게 손목을 내민다. 손가락으로 위를 쓰는 시늉을 하는 너. 간지러운 듯한 건 착각일 걸 알면서도, 비싯 웃음이 새어나온다.

 

 "이런 거 볼 바에야 그게 나아."

 "미안해." 

 "이제 그러지 마."

"응."

 "울지 마."

"매일 말걸게 내가."

"그거 좋네."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23시 55분에 맞춰뒀던 알람. 알람 소리를 듣자 순간 숙연해지는 방 안. 나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너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제 진짜 가겠네."

 "응."

 "목소리도 많이 작아졌다."

 "성화야."

 "응?"

 "하나만 약속해."

 "뭔데."

 "나한테 맨날 말은 안 걸어도 되니까. 밖에 좀 나가고 살아 이제." 

 "너 혼자잖아."

 "산 사람은 살아야지."

 "..."

 "내 삶만큼 살아." 

 "...알겠어."

 

 너는 편안한 표정이었다. 희미한 얼굴, 코 끝이 약간 짙었던 것 같기도 하다. 못 했던 말을 해서 좋다며 애써 크게 웃어보이는 너였다.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너 몰래 시큰거리는 울대를 소리 없이 삼켜내길 반복했다.

 

 순간 일렁이는 파란 빛. 그대로 눈을 깜빡. 마지막 숨결마저 흩어지던 공간. 허공에 손을 휘적여본다. 멍하니 내 손바닥을 바라본다 

 울지 말라고 했는데 미안해. 오늘까지만, 마지막으로 괴로워할게.



 

 날이 밝았다. 회사에 전화를 했다. 복직계 제출 절차에 관한 문의를 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방치해뒀던 창가의 선인장을 바라봤다. 물컵에 물을 받아 천천히 화분의 흙을 적셨다. 커튼을 세차게 걷었다. 청명한 하늘이었다. 창문을 활짝 열고 깊게 숨을 들이켜본다.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미용실을 예약하고, 옷을 다 갈아입고 현관에서 신발을 갈아신었다. 문을 열기 전, 몸을 돌려 방 안을 바라봤다.

 

 "다녀올게!"

Ateez SH x HJ Halloween-themed collab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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